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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5일 토요일

삶으로서의 일

오랜만에 북 리뷰를 써 보려 합니다.

단지 이런 책을 읽고 이렇게 느꼈구나 보다는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나는 지금 일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책 제목이 "삶으로서의 일"이라고 한 것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과 "삶"이라는 것이 불가분의 것이고, 일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없음을 얘기합니다.

저자인 덴마크 모르텐 알베크는 철학교수이자 CEO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다재다능한 남자네요. 저자는 먼저 "워라밸"이라는 개념부터 문제 삼아요. MZ세대를 비롯해 수많은 직장인이 꿈꾸는 것이 워라밸이 보장되는 직장생활인데요. 저자는 직장 생활과 직장 외 생활을 깔끔하게 구획짓는 것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만족, 행복, 의미의 차이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에 앞서 저자는 만족, 행복, 의미의 차이부터 고찰하네요. 먼저 만족은 욕구의 충족입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그 기대가 실현되면 만족감이 듭니다. 섹스에 비유하자면 발정이 나서 하드하게 능욕당하고 싶은데, 강한 남성이 하룻밤 나를 지배해주면 성욕이 충족됩니다. 그날밤은 매우 "만족"한 밤이 되겠죠. 만족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로 만족에 의해서만 삶을 살아가기엔 부족하겠죠.

행복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맞아 들어가는 경험입니다. 실존적 절정의 한 형태로 삶이 나에게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의 순간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더없이 기쁨을 느낍니다. 저에게 행복감이 오는 때는 바쁘게 일하다가 잠시 고요함이 찾아오는 오후나 집안에서 햇볕이 비치는 거실을 바라볼 때, 가끔 "몽글몽글한 기분"이 든다고 표현할 때입니다. 성호르몬의 선순환과 함께 주로 느낄수 있고요. 약간의 성적 자극이나 백일몽이 살짝 신체적 반응을 이끌어 내기 시작하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면서 내가 이 순간을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솟아나며 굉장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이 행복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일상의 지속이 아닌 금방 사라져 버리는 절정입니다. 마치 오르가즘과 비슷한 거죠.

반면 "의미있다"는 것은 내 삶이 존엄하고 희망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삶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갖추고 자기 가치를 깨닫고 자기 존중을 가지며 사방을 조망하는 느낌입니다. 소속감을 느낄 때, 더 고차원적인 목적이 있을 때, 삶에서 나에게 딱 맞는 자리에 이미 와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자리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의미라고 합니다. 섹스와 연관지어서 얘기하자면, 저는 펨섭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 앞서 얘기한 성욕의 충족이나 간혹 느끼는 행복감에 비해면 지속적이며 좀 더 고차원적 각성이라고 하겠죠. 섹스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중요함을 깨닫는 것, 파트너에 대한 배려와 존중, 봉사의 기쁨, 피학적 쾌락과 같은 누누히 얘기하곤 하는 제가 가진 펨섭의 요소들은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도취의 순간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닌 나에게 딱 맞는 경험들이 합쳐진 총계로서 이룩된 것이죠. 그래서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구요.


삶을 쪼갤 수 있다는 거짓말

시간을 나누면 삶이 나뉜다. 삶을 나누면 나 자신이 나뉜다. 이렇게 쪼개고 나면 삶의 각 부분이 서로 다른 요구를 유발하고 그것이 정당화된다. 마치 이것들이 내 몸과 내 삶의 전혀 다른 부분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한 사람이다. 당연히 삶 전체를 통해 발전해 나가야 할 한 명의 인간이다.

의미는 우리에게 실존적 면역 시스템 같은 역할을 한다. 의미는 우리가 압박을 받거나 슬픔에 잠겼을 때 반드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기쯤이나 행복을 누릴 때에도 의미는 삶이 오르막일 때 반드시 발생하는 환희에 대처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나의 자기 인식을 유지하게 해 준다

저자는 "워라밸"이 지금까지 고안된 개념 중에서 가장 위험한 개념 중의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삶을 나눌 수 있다고, 우리 자신을 나눌 수 있다고 우리를 속이려는 시도라는 거에요. 우리에게 주어진 쏜살같이 지나가는 단 하나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관리자의 책임

이제 저자는 관리자,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합니다. 관리자는 직원들이 병들지 않게 할 책임이 있으며, 그들의 삶이 의미 있어지게끔 도와줄 책임이 있다고요. 삶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직장생활이 의미있는 무언가가 되게 하기 위해서 기업은 이윤 못지않게 의미 창출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직장 환경을 생각해 보면 중간 관리자에게 이 책임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지 모두 느끼실 거에요. 파트, 팀, 그룹, 본부.. 그 이름이 뭐가 됐던 간에 한 조직의 리더는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대기업의 경우엔 그나마 며칠 동안이라도 조직장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리더십 교육도 시행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표이사부터 이런 쪽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관리자들은 본인 추스리기도 버거워 부하 직원들에게 일의 의미를 전달하는 게 불가능하고요. 관리자들 자신이 일의 의미나 철학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나 비전이 없는데, 그것을 전파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저자가 얘기하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의 힌트는 "필리아(philia)" 에서 찾습니다. 필리아는 상호 효용이나 일시적 기쁨과는 무관하게 지속되는 관계의 기초인데요. 상대의 근본적 본성에 대한 사랑이며 존재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마음가짐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저자가 철학교수라는 지적 배경이 있어서 지나치게 추상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현재 제 상황도 그렇지만... 직장에서 저는 금기시되어 있는 관리자와 에로스에 기반한 관계를 맺곤 했네요. 물론 그 기반에는 저자가 말하는 "필리아"가 전제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이긴 하지만요. 누군가가 저에게 그럼 그 상사들과의 만남이 직장에서의 직급을 떼어냈어도 가능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저 우주 어딘가에 인과율을 관장하는 무심한 절대자께서 우리를 관리자와 팀원으로 만나게 했고, 필연적인 인과율에 따라 결합했다고 하고 싶네요.


의미있는 일터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저자는 네가지 동인을 언급하고 있어요. 목적, 소속감, 개인적 성장, 리더십이 그 네 가지에요.

목적 - 조직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 단순한 일상 업무가 차지하는 기능적 역할이 아니라 내가 어떤 변화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나면 일에 에너지와 방향성이 생깁니다. 경영층의 역할이 중요하겠죠. 조직의 목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 소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알상 업무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합니다.

소속감 - 직원들은 주주나 경영진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매일 출근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 근무 조건이 좋지 않아도 이직률이 낮은 조직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일거에요. 

개인적 성장과 리더십 - 앞서 적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생각해 볼 부분과 총평

직업을 갖고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곤 할 거에요. 만일 생각을 거듭하다가 더이상 나는 남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자영업으로 독립하거나 자신의 회사를 차릴 것이고요. 답은 찾지 못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 생각을 지우고 다시 업무로 돌아가겠죠.

삶으로서의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은 마치 사춘기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실존적 고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알맹이 없는 회색빛 우울한 영혼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출근길을 하나의 고행이라 생각할 것인지,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나를 더 완성해가는 뿌듯함이 더해진 수행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

조직이나 관리자가 답을 던져주지 못한다면 내 자신이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고, 이런 과정은 앞으로 내가 관리자가 되었을 때 팀원들에게 보다 높은 확률로 그들의 삶 속에서 의미있는 직장생활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자는 만족스런 답을 던져주지는 못합니다. 우리 현실에 직접 적용할 만병통치약이란 없겠죠. 저자가 던져준 큰 개념. 일과 삶을 분리해서 파편화된 삶을 사는 것은 불행할 것이라는 것. 단지 숨쉬고 돈벌기 위해 직장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 살기엔 하나 뿐인 인생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 이 정도를 다시 인식한 것에 만족합니다. 



댓글 11개:

  1. 당신은 생각보다 먼 길을 달려왔다..
    바람도 쉬고,햇살도 쉬고,별님도 쉰다..
    당신도 쉬어 가길 바란다~~

    올 한 해 동안 즐겁게 해준 철없는 보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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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거운 주제네요 크리스마스에.....
    먹고 살기 바빠 직장있는거에 감사할뿐
    코로나 시국이나 빠져나가길
    자영업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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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발가벗겨놓고 사원증만 목에걸고 내 사무실에서 회계정리 시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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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혜연씨는 책도 많이 읽고 리뷰!! 철학적인 여자인거 같애요 4/4분기에 섹스도 많이 하고 2022년도 힘차게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시길 응원할게요 굿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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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때로는 뜨거운 감성의 노예로~
    때로는 차가운 이성의 주인으로~
    나름대로 균형을 잡아기는~
    혜연님의 고유한 인생사가~
    후회없는 삶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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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책읽는 동안 핑보 빨아주고 싶네여~~
    즐독 즐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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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화가 잘 통할듯한.
    전개가 궁금한.
    직접 마주하고픈 케릭이네요.^^
    Very Merry 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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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육체적 쾌락 충족을 위한 색정녀의 모습!
    정신인 쾌락 충족을 위한 지성인의 모습!
    어느쪽이 본캐이고 부캐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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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독서를 통한 지적인 앎의 확장도 중요히지만
    지속적인 강한 실행력이 따라 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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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저자의 주제에 관한 리뷰 코멘트가
    혜연씨의 섹스에 관한 사례를 들어
    기승전섹으로 설명했는데 나름
    재미있는 비유를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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